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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이소호 - <나의 미치광이 이웃> 비극과 외로움이 빚어낸 예술가들의 이야기. 단편소설 위픽시리즈

by 독자 또는 관객 2023. 9. 8.

나의 미치광이 이웃 │ 이소호 │ 위즈덤하우스 단편소설 위픽시리즈

'나는 미아의 불행조차 빼앗고 싶었다.'  불행마저 탐내게 하는 탁월하고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슬픔과 외로움으로 빚어진 천재 미아와 그를 질투하면서도 사랑하는 친구 유리의 이야기.

나의 미치광이 이웃은 이소호 시인의 첫 번째 소설로 호흡이 짧고 건조하면서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내용이었다. 글자크기는 컸고 책 역시 얇은 편이었는데도 다 읽고나니 여운이 길어 한참동안이나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봤을 정도로.

 

소설은 해수면의 상승과 기후변화로 인해 다시금 농업이 각광 받으며, 풍요로운 농지를 보유한 국가가 강대국이 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먹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만큼 예술과 지식, 인류의 문화는 일명 '문화 폭동'으로 인해 보존되지 못한 채 파괴되고 그 안에서 예술가들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남거나 혹은 사라져가는 암울한 시대.

 

그런 시대에, 미아와 유리가 있다. 한때는 찬란했던 예술의 도시였던 베를린. 베를린의 대학에서 함께 공부하고 다투고 고민하던 예술학도들. 미아는 혈혈단신으로 가족과 피붙이 하나 없이 차가운 바다 위, 잔인한 무관심과 방임 그리고 무책임에서  비롯된 '푸시 백 작전'에서 홀로 살아남은 무국적 난민이며 이러한 그의 상황은 그가 가진 천재적인 예술적 기질과 재능과 맞물려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펼쳐나간다. 현실에 존재하는 온갖 문제적 차별과 부조리함을 예술에 녹여 마치 '나는 무국적자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항의 하는 것처럼 보이는 미아의 작품들. 내가 보기엔 한없이 슬프고 안타까웠는데 작품내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들 그것을 '대단하다'고 극찬하거나 시기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내 생각엔 그런 그들의 태도마저도 지켜줄 국가가 있고 돌아갈 가족이 있는 자들의 일종의 권력처럼 느껴졌다. 안일할 수 있는, 안일해도 되는, 그래도 되는 권력 같은 것. 정말로 필사적이고 당장 생존이 급한 미아같은 사람들은 결코 누릴 수 없는 여유와 어리석음이랄까. 유리는 후자였다. 미술 교육에 대한 비용이 부담되어 아주 느리게 침몰해가는 배처럼 서서히 평수가 좁아지고 기울어지는 그저 그런 평범한 가정. 그리고 그것을 모른 체 하며 계속해서 원하는 바를 쫓았으나 눈에 띄는 재능을 가지지는 않았던 유리. 유리 역시 성실함에선 뒤지지 않았고 다른 학생들과 비교한다면 뛰어난 축에 속하는 인재였음에도 미아의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초라할 뿐이라 유리는 내심 미아를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미아와 룸메이트로 지내며 서로 속마음을 주고 받는 유일한 친구가 돼고, 작은 서점에서 둘만이 아는 작은 이벤트를 약속한 사이가 됐으면서도 한편으론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유리는 결국 졸업 전시에서 그 열등감에 불을 지필 큰 계기를 마주하게 된다. 졸업 후 연락이 완전히 끊어진 후로도 몇 년이나 지난 후에야 유리는 미아와의 과거를 돌아본다.

 

뒤늦게 유리가 미아의 흔적들을 좇아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며 역시 우정이 맞았구나-라고 생각해 조금 감동을 받기도 했는데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받은 문자 한 통을 보고 묘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에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 긴 시간동안 서서히 사라지거나 혹은 유리가 깨달음으로써 사라진 줄만 알았던 미아에 대한 열등감이 실은 사라지지 않고 불현듯 다시 싹틔운 것은 아닐까? 졸업 전시 이후에 관한 미아의 행적을 상상하며 '그래도 내가 낫다' 는 우월감을 가져 유리 스스로는 자신이 미아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무국적자인 미아에게 친구라 부를 만한 존재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는 것이 바쁘다' 는 핑계로 언제까지고 미아를 찾지 않았던 것도 역시 열등감이었을테고.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니 이 소설은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에 대한 작가의 어떤 감상으로부터 시작된 내용이었다. 우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세계의 어떠한 일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수선을 떨고 있지만 실은 무엇 하나 타인의 고통과 슬픔, 곤란함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공감도 하지 못하며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결국은 우리의 이런 무관심한 태도조차도 어떠한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책임한 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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